윤석민 은퇴 통산기록

KIA타이거즈 투수 윤석민이 13일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하신 윤석민 선수의 제2의 인생에 꽃길만 있길 기원합니다. 올림픽때보여준 투혼은 정말 잊지 못할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은 투수라고 생각했었는데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통산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메이저 진출까지 성공했고 그 이전가지는 정말 최고의 커리어를 가져갔었는데요, 야구팬으로서 정말 많이 아쉽습니다.

 

 

윤석민은 이날 “다시 마운드에 서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상적인 투구가 어려운 상황이다. 재활로 자리를 차지하기 보다 후배들에게 기회가 생길 수 있게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KIA는 윤석민의 의견을 존중해 은퇴 결정을 받아들였다.

 

# 윤석민 은퇴 소감


윤석민은 “선수로 뛰면서 팬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응원과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앞으로도 팬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살겠다. 정말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 동안 기회 주시고 지도해주신 감독님과 코치님, 구단 직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005년 2차 1라운드 지명으로 KIA타이거즈에 입단한 윤석민은 KBO 통산 12시즌 동안 398경기에 등판 77승(75패) 86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3.29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2011시즌에는 17승(5패) 1세이브 178탈삼진, 평균자책점 2.45, 승률 0.773를 기록하며 투수 4관왕(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4개 부문 1위를 차지한 선수는 KBO 역사상 선동열 전 감독과 윤석민뿐이다.

 

윤석민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금메달),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금메달) 등 국제대회에서도 보직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했다.

 

# 윤석민 통산기록


現 KIA 타이거즈 소속의 우완 투수. 201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의 트리플 A 노포크 타이즈(Norfolk Tides)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했지만 2015년 다시 KIA로 복귀하였다.

역대 등번호는 20(2005~2009) - 28(2010) - 21(2011~2013) - 55(2014) - 20(2015~2017) -24(2018~)

한 때 국내 최고의 우완투수였었다. 과거 빅3라고 불리던 배영수, 박명환, 손민한이 부상으로 차례차례 몰락한 뒤, 프로야구판에 뛰어난 우완 '선발' 은 찾기 힘들게 되었다. 선발 로테이션에 끼어 꾸준히 던져주는 우완 투수들은 대부분 해외파인 상황에서, 송은범과 함께 토종 정통파 우완의 자존심을 세울 기대주로 떠올랐다.

어려 보이는 외모로 '석민 어린이' 등의 별명을 얻었고, 2007년 팀에서 소년가장 역할을 맡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이때 윤석민상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AAA리그에서 수준 이하의 기량을 보여준 2014년에는 노폭전드 내지는 윤졸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무리로 뛰게 된 2015 시즌 한정 별명은 석센시오. 그리고 17시즌 이후 재활이 더디게 진행되어 복귀가 계속 미뤄지자 '그 먹튀', '그 90억(금액)' 내지는 '그 FA' 등의 별칭도 생겼다.

 

 

# 윤석민 평가


여러 가지 구종을 잘 던지는 유형의 선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런 이미지가 생긴 건 일단 본인이 구종을 배우는 데 열심이고 실전에서 한 번씩 사용해보긴 하기 때문. 일례로 광저우 아시안게임 훈련 중 임모씨에게 포크볼을 전수받기도 했으며, 2011 시즌에는 팀에 영입된 이범호를 통해 일본 투수들의 포크볼 그립을 전해받아서, 자신만의 포크볼 그립을 만들어 활용해 보기도 했다. 또 팜볼도 아주 가끔씩 던지곤 한다. 그 일례로 2009 한국시리즈 당시 6차전에서 이호준에게 팜볼을 던지고 결승 홈런을 허용했는데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또 쳐봐라'라는 심정으로 던졌는데 다 치더라"라고 인터뷰를 해서 한동안 까인 적이 있었다. 각설하고, 다양한 변화구 때문에 야구를 처음 접하는 라이트 팬들 중엔 다양한 구종과 제구력을 앞세운 피네스 피처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패스트볼-슬라이더 투피치 위주의 파워 피처다.

윤석민 투구 영상 레전드


폼이 좋을 때 주력 구종은 시속 155km/h 까지 나오는 포심 패스트볼과 복수의 슬라이더이며 간간이 서클 체인지업을 곁들이는 정도다. 커브도 나쁜 편은 아니지만 사용 빈도가 낮다. 사실 윤석민의 패스트볼 제구나 구위는 A급은 아니나 워낙 위력적인 슬라이더가 다른 구종을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양준혁 등 일부 전문가들은 윤석민의 서클 체인지업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으며, 실제 2009 WBC 베네수엘라전에서는 오히려 체인지업이 더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민은 슬라이더'라는 고정관념을 의식한 탓인지 더이상 체인지업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MLB에서의 실패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이도 상당수 있다. 평균적인 구속과 그에 조금 모자라는 제구와 구위의 패스트볼로는 아무리 위력적인 슬라이더가 있다고 하더라도 피홈런을 허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 2014시즌 류현진이 자신의 체인지업이 공략당하자 슬라이더와 커브 조합으로 MLB의 타자들을 이겨낸 것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 노포크 시절의 윤석민의 슬라이더는 국내에서의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낙폭이 적은 커터성 슬라이더가 되어버렸고 이러한 구종의 무브먼트 감소는 피홈런 증가라는 결과로 다가왔다.

 


물론 변화구 위주로 맞춰잡는 피칭도 가능하긴 하지만, 컨디션이나 구위가 좋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며 피칭 내용도 만족스럽게 나오는 일은 많지 않다. 실제로 던지는 구종이 늘어날 경우 윤석민은 오히려 부진했다. 일례로 잘 나갔던 2008 시즌에는 전체적으로 패스트 볼의 비중을 높게 가져갔으나 부진했던 2009, 2010 시즌에는 변화구 구사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는 본인의 피지컬 변화에 따른 구종 선택의 변경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08 시즌의 윤석민의 투구폼은 어깨상태가 절정인 상체 위주의 부드러운 투구폼에 140km 중후반대를 꾸준히 유지하는 패스트볼 위주의 피칭이었던 반면에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로 하체를 이용한 피칭을 시작하며 강력한 직구와 함께 안정적인 변화구 구사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2011 시즌 초에는 타자들이 아예 패스트 볼은 버리고 변화구에 타격 타이밍을 맞춰서 공략해 들어오곤 했다. 이 시기 구사비율이 높아진 서클 체인지업의 경우 장기인 고속 슬라이더과 패스트 볼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오다 속도를 유지한 채로 움직임에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직구처럼 보이게 오다가 '속도가 느려지면서' 변화를 일으켜 헛스윙을 유도하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격 리듬을 변화구 타이밍에 맞추고 있어야 공략이 가능한 공이고, 따라서 패스트 볼 구위가 밑밥으로 깔려있어야 타자가 소위 직구-체인지업의 타이밍 이지선다에 걸려서 속아넘어가게 되는데, 지나치게 변화구 구사율이 높아지고 패스트 볼 비중이 줄어든 탓에 애초부터 타자들이 변화구에 배팅 타이밍을 맞춘 채 체인지업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족족 얻어맞게 된 것이다. 감독을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이 점을 지적했고 본인도 이를 인식했는지 패스트 볼과 슬라이더 위주로 피칭 내용을 바꿨고 커리어 하이를 맞았다.

 


신인 시절에 마무리 투수로 뛴 적도 있기에 팀 사정에 따라서는 불펜 투수로도 기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내구성이 좋지 않아 철저하게 관리받아야 하는 선수를 혹사시키게 된다는 점에서 기아팬들은 양날의 검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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